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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Note

본질에 관하여

미국에선 이동 중에 책을 읽을 수 없어서 팟캐스트를 줄곧 듣는데, 그 중에 단연 최고는 비매거진 팟캐스트이다. 한참 안 듣다가 요즘 다시 듣기 시작하면서, 브루디외의 구별짓기 문화, 취향 사회학, 문화자본론에 대해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비 매거진을 연간 구독하거나 소장하고 있는 잡지가 많진 않다. 오히려 팟캐스트를 더 애청하는데 그 이유는 조수용 대표의 언어를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수용 대표가 얼마나 매거진 제작에 개입하는 진 모르지만, 적어도 그곳에서 일하는 에디터들은 조수용 대표의 태도와 같거나, 존경하거나, 모방하고 싶거나, 애정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일 것이다. 조수용 대표의 말과 생각이 곧 크게는 JOH 라는 회사의 방향성, 또 대중과 만나는 소통 창구인 비 매거진의 방향성일 것이다. 팟캐스트가 좋은 건 글과 달리 조금은 덜 다듬어진 날 것의 언어를 직접 들을 수 있어서이다. 물론 아주 사적인 대화보다는 다듬어진 것이고, 대본이 있어 어느정도 준비되어 있는 이야기들이겠지만 그래도 수십시간을 듣다보면 대본에 없는, 연륜과 경험에 기반으로 한 그의 철학과 생각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팟캐스트에서 여러 브랜드들을 다루지만 결국 그 안에 패턴이 있다. 그들은 취향 구분 짓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구분짓기가 시작된다. 브루디외의 책을 완독하지 못해서 당장은 연관짓기 뭐하지만 짐작컨데 비매거진은 브루디외 이론의 사례로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취향을 구분 짓고, 계급을 구분 짓는다. 유명배우가 나온 수십억 CF 보다 팟캐스트로 그들의 입을 통해 듣는 브랜드의 소개가 더 소비욕구를 자극하고, 나도 모르게 듣도 보도 못한 브랜드의 아무 제품이나 사고싶어진다. - 심지어 키링 같은 쓸모 없는. 종국에는 팟캐스트를 듣는 나로 하여금 그 계급에 들어간 것처럼 느끼게 하며 비매거진을 '읽는/듣는' 사람이야 라는 것에 어깨가 으쓱하다. 나는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또다른 패턴은 본질에 대한 것이다. 매 주제마다 해당 브랜드와 유사한 한국 브랜드의 CEO 나 인플루언서를 초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그 인물과 조수용 대표의 대화를 듣다보면 왜 매거진비가 이 브랜드를 선택했고, 어떤 지점을 축으로 삼았는지가 보인다. 그리고 이 게스트들을 한데 놓고 모아보면 공통된 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본질이다. 예를 들어, 포터 편에서 로우로우 대표를 초대해서 대화를 나누는데, "이것은 가방입니다." 가방입니다. 가방. 더 덧붙이는 것 없이 그저 가방이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그들이 포터에 대한 이해이다. 매거진비에서 다루는 모든 브랜들이 그렇다고 할 순없지만, 늘 본질에 충실한 브랜드에 주목한다. 창업자이든 그 기업의 모토이든 그만의 혹은 그것만의 '핵'을 꾸미거나 과장하는 것 없이 순수하게 본질을 담아내고 표현해내는 것에 주목한다. 여기서 브랜드의 '핵'은 철학가, 예술가들이 그렇게 찾고자 하는 "실재"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실재를 담아내고 표현하기 위해 세상과 소통하는 다양한 형태의 형식이 그 브랜드가 내놓는 사물, 즉 제품일 것이고. 예술가가 그 실재를 찾기위해 끊임없이 예술행위를 하는 것처럼, 사업가들도 본인의 실재를 찾기 위해 세상의 형태에 맞는, 즉 자본주의 형태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