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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론

추상 표현주의 작가를 중심으로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에 관하여

  • 1908년 in Art Since 1900.
  • Worringer “from Abstraction and Empathy” in Art in Theory 1900-1990.

프란츠 마르크와 칸딘스키, 그리고 키르히너 등 독일의 표현주의  자들로 이루어진 청기사파와 다리파는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 이론을 바탕으로, 당시 독일에서 일어난 급격한 도시화의 진행 과 함께 등장했다. 보링거는 르네상스 시기처럼, 인간과 외부세계 간의 조화를 이루었을 때, 자연에 감 정이입이 발생하며(인간의 신격화) 자연주의적 재현이 일어나고, 반대로, 인간과 외부세계 간의 부조 화가 일어났을 때, 그로부터 야기된 충격으로 인한 결과로 기하학적 추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즉 인 간은 외부세계(자연)에서 느끼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추상이라는 도피처를 만든다고 여겼다. 원시 시대에 살았던 사람과 지금 가장 문명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외부세계(미지의 자연 / 도시)에 대해 불안을 느끼며 동일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신석기 시대의 원시인과 같은 혼돈 속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보링거의 이론을 통해, 다리파는 비사실적인 색체, 불안한 원근법 등을 통해 불안감을 나타 낸다. 대표적으로, 키르히너는 도시의 원시적 형상(도시의 퇴행 징후 - 매춘부)을 그림에 넣어, 도시의 혼돈 속에서 나타나는 현대인들의 무감각한 태도를 그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보링거에게 추상은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었지만, 키르히너는 반대로 불안을 표현하고 심화시키며, 인간의 소외를 더 적극 적으로 드러냈다.

 반면, 청기사파는 키르히너와 달리, (보링거의 이론과 같은 맥락으로) 추상을 통해 인간의 소외 를 극복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화가로 프란츠 마르크와 칸딘스키가 있다. 먼저 칸딘스키는 그림의 내 용이 관람객이 그림을 봄으로써 느끼거나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적 영역 에서의 교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따라서 그에게 추상은 곧 사실주의이고, 사실주의가 추상인 것이다. 또다른 청기사파의 대표적 화가인 마르크는 자신과 타자(동물-자연)를 회화적으로 결합시키는 작업을 했다. 그는 이 결합을 동물과 자신이 똑같이 감각할 수 있는 고통으로 그려냈다. 이로써 자신과 타자(자연)를 공통의 감각(고통)으로 결합하고자 했으며, 이와 동시에 개별적인 고통이 자아내는 절망 으로부터 존재 간의 분리가 이루어짐으로써, 결합과 분리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소외의 모순적 측면 을 나타냈다. 이처럼 청기사파의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화해를 원했다. 자연 혹은 영혼 으로서의 감정이입을 작품에 그리는 것은 즉, 화가의 입장(자연/영혼)을 표현적으로 투영하는 것과 같 다. 즉 이들의 그림은 작가의 눈에 비친 세계를 회화적으로 드러낸 감정이입적 추상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추상 대 감정이입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런던의 소용돌이파(Vorticism)이다. 소 용돌이파는 자연 속에서 인간 중심주의인 “안이한 낙관주의”와 외부세계의 자연에서 느끼는 소외감으 로 비롯한 “냉철한 비인간주의”인 두 태도로 구분한다. 소용돌이파의 대표적 작가인 루이스는 “순수 하고 명백한 감정들은 모두 낯섦, 놀람 그리고 원시적인 초연함과 관련돼 있다. 세계는 지금 비인간화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비인간화의 문제점은 비인간화를 더욱 심화시켜 원시적인 초연함 의 한계에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1. 청기사파의 추상은 보링거의 추상과 구별되는 점이 있는가? 
  2. 키르히너가 말한 결합과 분리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소외의 모순적 측면에 대해서. 
  3. 칸딘스키의 영적 영역과의 교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4. 자연 혹은 영적으로서의 감정이입과 감정이입으로서의 추상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reference>

  • 1908년 in Art Since 1900.
  • Worringer “from Abstraction and Empathy” in Art in Theory 1900-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