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술이론

아즈마 히로키의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이 일에 소명을 지닌 자들이 체르노빌로 모여들어 “유형의 형태”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관광을 통해 이 유형(form)에 주목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체르노빌 박물관과 체르노빌 투어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가슴 뜨거운 무언가”를 그들만의 ‘유형의 형태'로 재현해내는 것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바로 이 계몽의 배반에 맞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계몽을 계몽하는 것, 사유를 사유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아닐까. (본문 중)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다. 그리고 2년 뒤, 아즈마 히로키(1)*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2)*가 있었던 장소로 ‘관광’을 다녀온 후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1부에서는 여타 여행가이 드 책에서 보기 쉬운 용지와 컬러로 인쇄되어, 그가 관광객으로서 직접 본 것을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전달하고, 도표나 지도를 넣어 사실적 정보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부에서는 체르노빌과 관련하여 지금도 각 분야 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 사람의 인터뷰와 취재진이 쓴 칼럼 형식의 글과 더불어 각 분야 전문가들의 글이 함께 실 려 있다. 본 발제는 전체 책 내용의 요약 및 분석보다 2부 취재 편과 칼럼 내용을 바탕으로 아즈마 히로키가 체르노빌 다크투어리즘 가이드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에세이 형태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20세기 산업 발전의 동력이 한순간에 인간 재난의 씨앗으로 된 원전을 어떤 자세로 마주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철학가이자 사회학자인 아즈마 히로키가 여행가이드 방식으로 체르노빌을 주목하고 있는가이다. 이 두 질문은 상호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히로시마,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에서 본 원전 의 상처는 아직 깊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원전은 지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체르노빌 원전은 지금 도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3)*국내에도 4곳의 원자력 발전소와 24기의 원자로(4)*가 가동 중이다. 책에 실린 인터뷰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처럼, 원전을 지금 당장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며, 폐로가 된 이후의 처리 과정은 인류가 해결해 야 할 또 다른 과제이다. 이처럼 20세기의 그런 참혹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원전이 없어서도 안 되며, 없앨 수도 없는 오늘을 살고 있다.

(1) 기억과 망각

아즈마 하로키는 “앞으로 원자력을 추진하든 포기하든 사고의 기억만은 잃지 말아야 하며, 역사는 계속되는 사고의 기억으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16). 즉 “우리가 싸워야 할 근원적 대상은 망각이다.”(166) 이 책은 달리 말하면, ‘강 건너 불구경’이었던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가 2011년 3월 11일 동인동 대지진을 겪은 후 ‘발등에 떨어진 불’로 바뀐 일본인을 대표하여 아즈마 히로키의 자성에서 나온 글로서, 직접 체르노빌 사고 현장을 관광하며, 전 세 계인들에게 망각과 싸우는 법을 알리고 있다. 즉, ‘핵 앞에는 국경이 없는 것처럼’(165) 전 세계 모든 사람은 이 망각 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욕망을 환기하는 것으로서의 관광

아즈마 히로키는 이 망각과 싸우는 법으로 ‘관광’을 제시한다. 체르노빌 원전과 가장 가까운 도시, 프리피야트에서 사고를 목격한 9세 소년 알렉산더 시로타는 시간이 흘러 지금은 존(5)*의 투어 가이드를 자처해, 살아남은 자로서 ‘증 언’한다. 그가 하는 투어가 다크 투어리즘 투어(6)*이다. 히로키는 이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 망각과 싸우는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현장에 직접 가는 것은 “욕망을 환기”하는 것인데, “실제를 눈으로 직접 보면 정보뿐만 아니라 감정이 더해져 지금까지 분명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해석이 바뀌고 관계가 바뀐다.”(232). 다시 말해, 사고 현장을 직접 ‘대 면’함으로써 마치 제어판의 버튼을 눌러보고 싶은 감정, 누르고 나서 단단함을 감각하는 경험은 그 어떤 것이 주는 감각보다 강하며, 그 자체로 숭고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3) 계몽의 계몽, 사유의 사유 

체르노빌과 관련된 인물 여섯 명의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는 단어로 ‘계몽’과 ‘교육’이 있다. 존 투어를 허 가한 국가의 목적은 “존을 통해 방사능 위험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154) 라고 밝힌 것처럼, 과대 공 포를 막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체르노빌 원전과 프리피야트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원전 사고를 ‘교훈' 삼아 계몽하고, 원전추진정책의 프로파간다로써 사용하려는 것”(155)이라고 말한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원전은 20세기 산업발전의 동력으로서 진보로 향해 나아가는 계몽의 과정 중에 있었다. 그러나 체르노빌 사고를 통해 우리는 계몽의 배반을 경험했다. 이 지점에서 체르노빌 다크투어리즘 투어는 의미가 있다. 사고 이후 29년간, 이 일에 소명을 지닌 자들이 체르노빌로 모여들어 “유형의 형태”(160)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관광을 통해 이 유형 (form)에 주목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체르노빌 박물관과 체르노빌 투어를 통해 방문객들에게 전하고 있는 “가슴 뜨거운 무언가”(160)를 그들만의 ‘유형의 형태'로 재현해내는 것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바로 이 계몽의 배반에 맞서 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계몽을 계몽하는 것, 사유를 사유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아닐까. 

(4) 감각적 경험을 통한 철학적 물음 

그런 의미에서, 책에 실린 체르노빌 박물관 부관장 안나 콜로레브스카의 인터뷰와 비영리단체 '프리피야트 닷컴’ 대표이자 이번 아즈마 히로키의 투어 가이드였던 알렉산더 시로타의 인터뷰를 주목하고자 한다. 먼저, 체르노빌 박 물관은 문서를 통한 객관적인 역사 자료의 비중보다 비극의 기억을 감정과 상징성을 통해 전시한다. 예술가 아나트 리 하이다마카 씨(7)*가 ‘시를 쓰듯 전시한 것’(81)처럼, 감성적인 호소력이 짙은 전시를 통해, 원자로 붕괴 사고를 넘 어, 마치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체르노빌 박물관 부관장 안나 콜로레브스카 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사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위험 버튼을 누르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 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아니요’라고 말할 힘이 없었다. 누가 버튼을 눌렀는가가 아니라 왜 버튼을 눌러야 했는가”(203)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찾는 시도가 바로 이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시도이며, 그 책임을 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알렉산더 시로타는 트리피야트닷컴(8)*의 대표이다. 처음에 사이트는 원주민들의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개설되었는 데 지금은 2만여 명의 커뮤니티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이다. 그는 트리피야트 닷컴에서 정기적으로 투 어 신청을 받아 체르노빌 존에 들어가 금지된 지역을 안내한다. 이러한 자들을 스토커라고 부르는데, 체르노빌에서 최초로 스토커라고 불린 알렉산더 나우모프(9)*는 “사고 후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205)간다고 말한다. 이들처럼 관 광 가이드는 “피해자가 후세에게 사고의 진실을 전하는 '구술 역사’의 현장”(231)으로서 또 다른 전시 방식이 되기도 한다. 투어 이외에도 트리피야트닷컴은 체르노빌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지금 회원 중 90% 이 상이 체르노빌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며, 이 사이트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발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중립적인 입장”(217)이라고 말한다. 

(5) 의도하지 않은 역사화 

이 두 명의 인터뷰이들의 태도를 통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의도하지 않음'에 있다.(247) 이들은 오늘 체르노빌에 서 살아가고 있는 자로서 의도하지 않은 역사화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 체르노빌의 관광지화는 결과(effect)로 비 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인(cause)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체르노빌 박물관(10)*과 트리피야트닷컴은 이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원인은 계획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향식 주도가 아닌 상향 식 주도로 이루어진 이 의도치 않은 역사화는 인터뷰이 6명을 포함한 지자체, 주민 단위의 다양한 사람들의 자발적 움직임(사적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되어 “역사의 자동운동”(248)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질문이 중요한 이유이다. 1986년 4월 26일 ‘그날’이 화석처럼 굳은 게 아니라, 체르노빌 원전으로 가는 출퇴근 길에 마주친 야생말을 신기해하는 현지인들이 살아가고, 변화하고 있는 일상 공간이다. 그리고 우리에 게 체르노빌은 ‘관광’이라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철학적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이 물음에 대해 답을 하는 열린 지평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이지만, 책 내용 속에서 주체로서의 일본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서 문에서 ‘새로운 사고 가능성이 과학기술문명의 기본조건’(16)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25년 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그 상처를 감내하고 있는 일본에서, 아즈마 히로키는 범지구적으로 상처를 입은 그리고 상처를 입을 인류에게 ‘관광’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전에는 질문하지 못했던 것을 질문하도록 우리에게 제안하는 것이다.

  • 한 권의 단행본에서만 참고를 함. 아즈마 히로키,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양지연 옮김, 서울: 마티, 2015. 
  • (n)*는 각주를 뜻 함. 아래에서 내용 확인. 본문의 (n)은 위 단행본의 참고 페이지를 표시 함.

(1)*  아즈마 히로키는 1971년 생의 도쿄 출신으로, 문화 비평가이자 소설가이자 철학가이다. 현대사상, 표상문화론, 정보사회론을 전공했다. 그의 대표저서로 는 《존재론적, 우편적-자크 데리다에 대하여》(1988)이 있다. 

(2)* 1986년 4월 26일, 소비에트연방 (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기에서 대규모 원자력 사고가 발생했다. 방사성물질은 광번히하게 확산됐고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3개국에 이르는 지역에서 약 40만 명이 피난을 떠났으며, 피해자 수는 약 4000명, 9000명, 1만 6000명 등 측정 방법에 따라 이견이 있다. (아즈마 히로키,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양지연 옮김, 서울: 마티, 2015, 24) 

(3)* 현재 우크라이나 원전을 열다섯 기 가동 중인데, 앞으로 최대 일곱 기를 더 지을 계획이다. (앞의 책, 155)

(4)* 한국의 원자력 발전량은 세계에서 6위이며 국토 대비 원전 밀집율은 세계 1위이다. 원전은 전체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5 존의 정식명칭은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이다.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 권내의 강제이주구역을 지칭했다. 일반인이 들어가려면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아 야 한다. (앞 책, 26) 6 다크투어리즘은 전쟁, 재해와 같은 인류의 아픈 족적을 더듬어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지역의 슬픔을 공유하려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앞의 책, 99)

(5)* 존의 정식명칭은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이다. 체르노빌 원전 반경 30km 권내의 강제이주구역을 지칭했다. 일반인이 들어가려면 관할 관청의 허가를 받아 야 한다. (앞 책, 26)

(6)* 다크투어리즘은 전쟁, 재해와 같은 인류의 아픈 족적을 더듬어 죽은 자에 대한 추모와 함께 지역의 슬픔을 공유하려는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앞의 책, 99)

(7)* 아나트리 하나다마카는 1938년 생으로 우크라이나 인민 예술가이다. 키예프 대조국전쟁박물관 주임 디자이너이자 체르노빌박물관, 키예프 서적, 출판 박 물관, 마케도니아 성삼위일체 교회 외 국내외 박물관 전시 디자인 및 기념물 인테리어 등 수많은 작업에 참여했다. (앞의 책, 96)

(8)* 트리피야트닷컴(http://pripyat.com)은 프리피야트 시민이 2003년에 사이트 및 커뮤니티를 만든 것이 발단이 되었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으 며 2007년부터 비영리단체법인이 되었다. 러시아, 영어, 독일어로 열람 가능하다. 처음 목적은 ‘프리피야트의 젊은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었는데, 법인화와 함께 사이트도 체르노빌 출임금지구역 전반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정보는 11개의 항목으로 분류, 정리되어 있고 특히 프리피야트와 체르노빌, 언론, 사진, 갤러리, 문학과 예술항목의 내용이 충실하다. 프리피야트 닷컴은 마을 자체를 박물관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서 명 활동과 여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외에도 사진전, 자동차 경주, 식목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분과프로젝트로 버추얼 프리피야트와 3D이미지 작성 프 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매개하고 있다. (앞의 책, 270)

(9)* 현재 트리피야트닷컴의 이사이며, 체르노빌 사고 당시 경찰관으로 사고 다음날인 4월 27일부터 5월 2일까지 프리피야트 옆에 위치한 야노프 역 경비를 맡 았다. 1988년 1월부터 9월까지 존 경비대장을 지냈다. 이 무렵부터 사고에 관한 정보를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국내외 저널리스트와 학자에 게 존을 안내해 존 안내인, 일명 스토커라는 별칭을 얻었다. (앞의 책, 205)

(10)* 체르노빌 박물관 철학인 ‘슬픔에는 한계가 있지만 우려(공포)에는 한계가 없다’가 전시실 입구 쪽에 걸려있다. 체르노빌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장으로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 찾아오는 모든 이의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장이라는 목적의식이 드러난다. 전시 공간의 주체는 결국 체르노빌의 가슴 아픈 역사 가 아닌, 그 장소를 찾은 우리들이 주체가 되며,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환원되어 정의내릴 수 없는, 무한한 우려를 만드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