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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론

한국의 앵포르멜(enformel) 미술

박서보 작가를 중심으로

  • 윤난지, 「한국 앵포르멜 미술의 ‘또 다른 의미’」
  • 이승현, 「 한국 앵포르멜과 단색화의 물질과 행위에 대한 비교문화적 고찰: 서구 및 일본 전후미술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의 어원은 프랑스의 전후미술을 대표하는 앵포르멜 운동에서 유래했다. 2차세계대전을 겪은 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간의 태초(무)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고, 이에 따라 추상표현주의, 앵포르 멜 미술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1958년, 일제강점기를 지나 6.25전쟁을 겪으며 물질적, 정신적 위기에 처해있었다. 이 당시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체제개혁의 새 바람이 불고 있었다. 또한 유학을 다녀온 젊은 예술가들과 일본을 통한 서구문화의 유입은 한국 화단에 형식적으로나 태도적으로나 큰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 다.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은 현대미술가협회(이하:한미협)을 중심으로 최초로 시작되었다. 구체제에 대한 비판의 식이 강했던 이 그룹은 개인 작업보다는 그룹전 위주로 작품들을 선보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이 프랑스의 앵포르멜 미술의 형식만 빌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새로운 추상형식을 세운다는 미학적 동기 가 강해 개인의 독자적인 모색 또는 개인전이 성행했다면, 한국에선 체제 개혁의 특징이 강해 선언문을 작성하거 나, 그룹전 위주의 움직임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 당시 한국의 화단에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낼 새롭고 강렬한 형 식의 언어가 필요했다. 그 언어로 프랑스의 앵포르멜 미술의 형식이 그들에게 적합했으며 이를 자발적 선택, 즉 능동적 수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들의 작품이 서구의 작품들과 유사하지만 작품 안에 담긴 태도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한국 화단이 서구의 것을 배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윤난지는 “한국 앵포르멜은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프랑스 앵포르멜 사이에서, 그 둘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계되면서도 둘 중 어느 한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또 다른’ 종류의 전후 추상미술로서의 위치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는 문화의 수용이 투명한 거울처럼 원본을 자동적으로 복제하는 과정이 아니라 수용주체의 요구에 의한 선별과 해석의 과정을 거쳐 원본 과의 다름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고 서술했다.*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에서 주목해야하는 작가가 있다. 한미협의 주요 멤버이자, 한국 최초의 앵포르멜 미술이 라고 인정받는 작품 <NO.1>을 그린 박서보 작가이다. 박서보 작가는 한미협의 수장으로 그당시 한국의 새로운 미술, 앵포르멜 미술을 이끌었다. 이후, 앵포르멜 미술은 한국 화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앵포르멜 미 술의 형식을 그린 작품이 국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되며, 변혁의 흐름으로 시작해 한국현대미술의 주류로 자리 잡 았다.

 작가 박서보가 한국의 앵포르멜 미술 운동, 더 나아가 한국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앵포르멜 미술의 시작을 알린 작가이며 2020년, 앵포르멜 미술이 시작하고 약 50년이 지난 지금, 해외에서 한국 미술로 각광받는 단색화의 대표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서구의 앵포르멜 미술이 기원으로의 회귀*, 즉 인간의 실존을 시각화한 미술이라는 점을 염두해둔 다면, 박서보 작가의 행보를 주목하는 것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큰 의의가 있음이다. 그러나, 박서보의 행보가 서구의 행보를 그대로 따라갔다고 볼 수는 없다. 박서보의 작품이 자기를 비워내는 ‘수행적’성격을 띈다는 점과 같은 동양적 사상은, 비록 처음엔 서구의 언어를 빌렸을지라도 지금은 그만의 전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낸 것이 라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reference>

  • 윤난지, 「한국 앵포르멜 미술의 ‘또 다른 의미’」, 『 미술사학보』, 48, 123-154, p. 150.
  • 이승현, 「 한국 앵포르멜과 단색화의 물질과 행위에 대한 비교문화적 고찰: 서구 및 일본 전후미술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 홍익대학교 박사 논문 (2019), p.150.